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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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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섹스투스 폼페이우스 토벌과 제2차 삼두정치의 붕괴 ==== BC 38년 1월 옥타비아누스는 스크리보니아와 이혼하고 리비아와 재혼하였고 섹스투스 폼페이우스의 부하 중 한 명이 옥타비아누스 측으로 전향하여 사르데냐와 코르시카를 넘기는 일도 일어나면서 옥타비아누스와 섹스투스 폼페이우스 사이의 휴전이 깨졌다. 옥타비아누스는 섹스투스 폼페이우스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많은 해군을 보유한 안토니우스의 협력이 필수적이었고 안토니우스 역시 카이사르의 유업인 파르티아 원정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옥타비아누스의 병력 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양측은 타란툼에서 만나 BC 38년으로 기한이 종료되는 제2차 삼두정치 체제를 5년 더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안토니우스가 옥타비아누스에게 전함 120척을 제공하는 대신에 옥타비아누스는 20,000명의 병력을 안토니우스에게 보내기로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옥타비아누스가 약속했던 병력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2,000명 밖에 보내지 않았기 때문에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의 사이가 다시 나빠지게 된다. BC 36년 옥타비아누스는 레피두스까지 끌어들여 섹스투스 폼페이우스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작전을 시작하였다. 비록 군사적 재능이 부족한 옥타비아누스가 고전하였지만 카이사르가 일찍이 옥타비아누스에게 군사 자문으로 붙여준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가 나우로쿠스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는 대활약을 보이면서 섹스투스 폼페이우스 세력은 몰락하였고 섹스투스 폼페이우스 자신도 붙잡혀 처형당했다. 이후 섹스투스 폼페이우스가 거점으로 삼았던 시칠리아를 두고 옥타비아누스와 레피두스가 대립하였지만 옥타비아누스가 레피두스의 군대를 돈으로 매수하여 오히려 레피두스를 몰락시켜 버렸다. 이후 레피두스는 세력을 잃은 채 허울뿐인 최고 제사장 지위만 유지한 채 강제로 은퇴해야만 했고 이로서 제2차 삼두정치 체제의 한 축이 무너지고 이제 로마의 패권을 두고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의 본격적인 대결이 불가피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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